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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 이현석, 자음과모음(2021) 지난 해, 젊은작가수상작품집에서 「다른 세계에서도」를 읽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얼떨떨함과 감탄을 동시에 느끼고 내가 믿고 읽는 작가님 리스트에 추가했다. 그래서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고민도 하지 않고 구입했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시 읽은 「다른 세계에서도」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작품들도 읽는 내내 너무 좋았다. 마음이 싸르르해진다고 해야 하나. 소설의 소재와 인물들, 그 인물들의 시선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차가워보이는데 따뜻하다. 손을 가져다대기 전에는 따뜻한지 알 수 없는? 마냥 따뜻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좋은 의미로). 여덟 개의 단편 중에서도 유독 좋았던 작품 세 가지가 있다. 의식을 잃으면 이름도 잃는(「너를 따라가면」) 세계,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
여자 없는 남자들_무라카미 하루키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Axt(악스트) 2018.01/02 극단을 치닫는 범죄자들보다 기실 경계를 오가는 잠재적인 '보통 악한'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돌아보면 우리가 타인은 물론 자싱네게 행한 비밀스러운 잘못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픽션들에서는 무결점의 의인이나 영웅을 갈망한다. -조용호 상처는 내가 내 밖과 접촉하는 데서 생긴다. -이인성 시간은 자비 없이 흘러가면서 우리에게 '있다'와 '있었다'를 섬세하게 분간할 것을 요구하지만 나는 늘 고집스럽게 엇박자이다. -안희연 귓속말은 듣는 자를 말하는 자에게 예속시킨다. 귓속말을 들은 자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귓속말을 들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비밀 준수의 의무를 떠안는다. 듣는 것이 비밀 준수 서약..
재은_낯선하루 지난 달, 부산에 있을 때 일부러 찾아서 방문했던 '북그러움'이라는 독립서점. 시중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여행지에 독립서점이 있으면 알아보고 가는 편이다. 낯선하루, 적게 벌고 행복할 수 있을까,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세 가지 책을 구입했었는데 바쁜 탓에(핑계임) 낯선하루만 거의 다 읽어가는 중이다. 우선 책이 얇고 가벼워서 읽기가 편해 만족스럽고. 독립서점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조금 더 솔직하다. 그래서 좋다. 특히 첫 작품인 '나는 그녀의 치아를 사랑해'를 읽으면서 f(x)의 첫사랑니를 들었을 때 정도의 쇼크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읽으면서 섬세한 표현에 굉장히 놀랐다. 그녀의 삐뚤빼뚤한 치아가 좋았다. 입 맞출 때 계단을 오르내리듯 가지런하지 못한 치열을 하나..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마』 구입한 지는 제법 됐는데 새로운 직장생활을 하느라,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잠이 늘어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사실 몇 주 전에 앞 부분 몇 쪽을 읽다가(그래봤자 3페이지 정도)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초반을 조금 벗어나니 뒷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게 바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저력인가 싶기도 하고. 책을 읽지만 작가 이름은, 특히나 외국 작가 이름은 기억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쉬이 잊혀지지 않으며 다른 작품은 어떤지 호기심이 든다. 나를 보내지마, Never let me go. 제목만 보면 흡사 로맨스 소설 같다. 처음에 이북으로 구입을 했을 때만 해도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아,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면 기본은 하겠지'라는 ..
박가람_사랑과 가장 먼 단어 ​ 예전에도 말했잖아요 제 방에는 밤이 검은 물처럼 차오른다고 천장까지 물이 차는 12시에는 잠깐 질식하지만 새벽은 유영하기 좋은 시간이죠 아침이 아직 보라색 일때는 손끝 발끝이 퉁퉁 불어 주름져요 손발만 늙어버린 거죠 그땐 휴대폰을 잡고 당신에게 연락할까 고민해봐요 늙어버린 내 손이 아직 어린 나보다 현명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해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는 딱 12시에만 꺼내봐요 하루에 두 번이나 질식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늘은 사랑이 전화를 받지 않고 소리샘으로 흘러드는 날 아무도 마셔주지 않는 내 이야기만 고요히 고이는 밤 당신의 창 밖에는 무엇이 피어있나요 만약 제가 피어있다면 지금 건너가겠습니다 꺾이는 것보다 지는 것이 두려워지는 봄입니다 만약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봄이라면 저는 만개..
알랭드 보통_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1. 첫 번째 코스가 나왔다. 요리를 담은 접시들의 배치는 잘 꾸민 프랑스 정원 특유의 대칭성을 보여주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손대기가 그러네요." 클로이가 말하고는 [내가 그 느낌을 어떻게 알겠는가] 덧붙였다. "이런 구운 참치는 먹어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자기에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클로이는 너무나 오랫동안 나의 유일한 생각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내가 그녀와 공유할 수 없는 하나의 생각이었다.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되고 만다. 2. ..
조윤제_한국의 권력구조와 경제정책 '한국국민과 사회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 1. 한국의 경제·사회 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그 방향이 자주 바뀌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철학의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17,18세기부터 자유주의, 공리주의, 사회주의 등의 사상이 출현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깊어지면서 그들의 제도도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모양을 갖추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2. 한 나라에서 정책이 정해지고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경제적 합리성 추구와 정치적 역학, 시대적 조류, 사회적 갈등의 타협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국가정책의 결정이 원활하며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국가지배구조와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