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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리틀 포레스트



"배가 고파서"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시골로 왔냐는 은숙의 물음에 혜원이 대답한다. 도망치듯이 떠나온 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혜원을 움직이게 한 진짜 원인은 그 이유들로부터 비롯된 결핍과 공복이다.
시험준비와 알바로 여유가 없는 생활에서 혜원은 삼각김밥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순간의 배고픔은 채울 수 있으나 단지 그뿐인 것이다. 제대로 된 식사는 따뜻하고 풍족하다.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의 정성과 사랑, 누군가와 함께하는 온기라든지. 그래서 혼자 나가 사는 사람들이 지치거나 힘들 때 하나같이 '집밥'을 그리워 하는 게 아닐까.
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치열했던 취준 시기를 거치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집밥을 찾아 집으로 향했다. 햇반이나 노랗게 눌어붙은 밥이 아닌 갓 지어낸 따뜻한 밥, 조금은 심심하지만 담백했던 반찬들도 좋았지만 진짜 좋았던 건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이나 잠시나마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다른 관객들은 웃고 넘긴 혜원의 저 말이 마냥 가볍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이삼일, 일주일에서 열흘, 결국은 사계절을 채우는 혜원에게 재하는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냐 묻는다. 일시적으로 도망친 것이나 다름 없던 혜원은 재하의 말에 용기를 내고 도피했던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아주심기"를 위한 준비를 한다.
영화를 보다 재하의 말을 듣고 나도 왠지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의 삶이 크게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을 해내며 바쁘게만 살고 있지 않은가. 요즘의 나는 더더욱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아주심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나의 옮겨심기는 계속될 것이고 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곳에서의 아주심기를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무엇보다 한 편의 아름다운 ASMR을 보는 듯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