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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七月與安生 (2017)

시설이 갖추어진 깜깜한 영화관에서 집중한 채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편한 옷차림과 맥주 한 캔과 함께 하는 영화도 좋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사람에게 둘러쌓여 지고 온 피곤함을 이기지 못 해 그 좋아하는 영화도 한동안 보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지. 아- 이런 저런 핑계대고 영화 안 보는 거 보면 나 영화 좋아하는 거 아닌가, 어디서 영화 좋아한다는 소리 하지 말아야지 하고. 

11월에 개봉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이 영화는 꼭 봐야지 생각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런 독립영화(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형적인 상업영화는 아니니까)는 거의 상영을 해주지 않는 편이라 발만 동동 굴렀는데 어느새 옥수수에도 올라와있고. 아무튼 이번주는 제법 칼퇴도 했고,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런지 여유가 있어 기쁜 마음으로 영화를 재생했다. 


글쎄. 내가 남자가 아니라 남자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기분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명쯤 생각나는 친구가 있으리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유독 한 친구가 생각났다. 우리는 늘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고 양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순간 우리는 누구보다 계산적이었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참 좋아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속에 어찌 단순히 하나의 감정만이 있겠는가. 친구와의 관계이든, 연인과의 관계에서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 좋은 사랑과 꽁꽁 숨기고 싶은 증오와 분노를 넘나든다. 애증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겠는가. '애증'이라는 단어는 그 누구보다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을 때나 성립할 수 있다. 안부나 묻는 친구,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에게서는 굳이 '愛'와 '憎'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까. 애초에 미움을 느끼는 것도 애정 속에서 생기는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애증을 느끼는 것 자체가 우리는 특별한 사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칠월과 안생의 관계가 우리가 쉽게 친구 사이에서 겪게 되는 애증의 전형 아닐까.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에게 상처를 쉽게, 그리고 더 깊게 남길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가명의 집 욕실에서 칠월과 안생이 싸우는 장면이다. 어릴 땐 웃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서로 비수가 되어 꽂힌다. 서로를 무너뜨릴 약점을 너무나 잘 아는 거지. 문득 상처가 될 말만 골라서 네게 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왠지 부끄러웠고, 네가 보고 싶어졌다. 


마초형 남자캐릭터가 득실거리는 영화 판에서 여자 주인공 두 명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점도 참 좋았다. 이 영화로 두 배우 모두 금마장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납득이 간다. 대만영화제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대만영화는 대부분 내 취향인 것 같다. 나의 소녀시대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대만 청춘 영화 특유의 그 느낌이 좋다. 아무튼 칠월 역을 맡은 마사순과 안생 역을 맡은 주동우 둘 다 제 역할을 잘 해내주었다. 본래는 칠월 역의 마사순은 반항적인 캐릭터를, 안생 역을 맡은 주동우는 친근한 이웃집 소녀 같은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는데 이 영화에서는 상반되는 캐릭터를 잘 그려주었다. 


"이 세상에서 널 사랑하는건 나밖에 없어"


"튼튼한 내 팔에 누워"


보다 보니까 둘 다 참 예쁘더라. 마사순은 한지민 느낌이 나고 주동우는 누구를 닮은 것 같은데 바로 떠오르지가 않는다. 둘 다 반짝반짝 예뻤고, 우는 장면도 현실적이고 좋았다. 영화관에서 봤으면 눈물 찔끔찔끔 흘렸을 것 같다. 특히 주동우가 한 "튼튼한 내 팔에 누워" 이 장면은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열일곱의 안생에게서는 친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친구의 첫사랑에 대한 질투심이 느껴졌다면, 스물일곱의 안생에게서는 칠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간의 미안함이 읽혔다. 눈빛으로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나타낼 수 있다니, 주동우 배우가 많이 기대된다. 



 열셋, 운명처럼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열일곱, 우리에게도 첫사랑이 생겼다.
 스물, 어른이 된다는 건 이별을 배우는 것이었다.
 스물셋, 널 나보다 사랑할 수 없음에 낙담했다.
 스물일곱, 너를 그리워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친구가 있었고 그런 친구가 보고싶다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추천한다.